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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주도권을 돌려주는 용기: 질문, 선언, 그리고 침묵의 윤리 본문
변화의 주도권을 돌려주는 용기: 질문, 선언, 그리고 침묵의 윤리
이석재 코치
효과성 코칭 방법론의 개발자
24. 2. 2026
1. 개입의 유혹과 코치의 경계선
우리는 누군가를 돕고 싶을 때, 혹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에 직면했을 때 본능적으로 ‘개입’의 유혹을 느낍니다. 코칭 현장에서 대화가 매끄럽지 않거나, 상대방이 말을 멈추고 깊은 침묵에 빠질 때 코치는 불안해지기 마련입니다. 이 불안은 대개 “지금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더 세련된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진정한 전문성이란 개입을 줄이는 기술이 아니라, 개입의 성격을 분별하는 기준을 갖는 것입니다. 그 기준은 명확한 규칙으로 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감각되는 윤리이자 코치의 자기인식(자신의 내면 상태와 의도를 실시간으로 알아차리는 능력)에서 작동하는 나침반입니다. 그 나침반이 가리키는 단 하나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변화의 책임은 여전히 고객에게 있는가?”
2. 멈춤은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가 구성되는 ‘사건’이다
코칭 대화에서 가장 큰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순간은 대화가 멈출 때입니다. 우리는 흔히 대화를 물처럼 끊임없이 ‘흐르는 것’으로 정의하며, 멈춤을 곧 ‘단절’이나 ‘실패’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3S-FORM(코칭의 핵심 요소인 내적 감각, 구조, 시스템을 통합적으로 다루는 프레임워크)의 관점에서 보면, 멈춤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멈춤은 자동화된 사고가 잠시 작동을 멈추고, 익숙했던 자기 대화가 힘을 잃으며,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새로운 인식이 움직이는 ‘사건’입니다. 즉,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말로 정리되지 않은 거대한 변화가 수면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이때 코치가 멈춤을 ‘문제’로 해석하면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와 같은 질문으로 침묵을 깨려 합니다. 하지만 이는 정중한 형식을 빌린 압박일 수 있습니다. 반면 멈춤을 ‘사건’으로 해석하는 코치는 지금 이 침묵이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음을 믿고 기다립니다. 침묵이 보호되어야 할 사건이 되기 위한 조건은 단 하나, 그 침묵이 여전히 고객의 탐구에 속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3. 서두름의 이면: 구조적 압박과 윤리적 부담
코치가 침묵 앞에서 서두르게 되는 이유는 단순히 개인의 미숙함 때문만은 아닙니다. 실제 현장에서는 코치를 재촉하는 강력한 구조적 조건(시간, 비용, 결과물 등 대화를 둘러싼 환경적 제약)이 존재합니다.
- 시간의 유한성: 대부분의 코칭은 정해진 회기와 시간 내에 진행되므로, 코치는 시간을 '기다림'이 아닌 '손실'로 인식하기 쉽습니다.
- 성과에 대한 압박: 조직 맥락에서는 리더십의 변화나 가시적인 실행 결과가 늘 기대됩니다.
- 전문직 정체성: "유능한 전문가라면 무언가 유익한 개입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불안을 자극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서두름이 무책임이 아니라 오히려 ‘돕고 싶다’는 윤리적 책임감에서 나온다는 점입니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는 책임감이 역설적으로 개입의 유혹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압박에 굴복하여 코치가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순간, 변화의 성숙은 중단되고 맙니다.
4. 개입의 세 가지 형식: 질문, 선언, 그리고 침묵
코칭에서 질문, 선언, 침묵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고객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선택되는 고도의 개입 형식입니다.
① 질문: 공간을 열거나, 혹은 닫거나
질문은 본래 고객의 탐구를 여는 장치입니다. 하지만 질문이 ‘대답’을 요구하거나 ‘속도’를 요구하는 순간, 그것은 압박이 됩니다. 코치는 질문을 던지기 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이 질문은 고객의 탐구를 돕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나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것인가?”
② 선언: 관계의 안전을 보존하는 힘
선언(declaration)은 설명이나 설득이 아니라, 현재의 관계적 조건을 명확히 하는 행위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이 멈춤도 코칭의 일부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고객의 경험을 해석하지 않으면서도 관계를 안전하게 붙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는 대화의 주도권이 고객에게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강력한 지지입니다.
③ 침묵: 가장 정교하고 미세한 개입
침묵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임이 아닙니다. 그것은 변화의 책임을 고객에게 남겨두고, 그의 내적 작동이 끊기지 않도록 지켜보는 고도의 개입입니다. 침묵은 외부의 기대를 멈추게 함으로써 고객이 처음으로 코치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에 온전히 집중하게 만듭니다.
5. FORM 모델과 주도권의 보존
효과성 코칭의 FORM 프로세스 또한 이 기준(변화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아래에서만 생명력을 얻습니다.
- F(Feedback; 피드백):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통제가 아닌 통찰을 돕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 O(Opportunity; 기회): 고객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기회를 발견하게 해야 합니다.
- R(Reconstruction; 재구성): 코치의 해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관점이 스스로 변화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 M(Move forward; 전진): 압박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스스로 걸음을 뗄 수 있도록 돕는 과정입니다.
결론: 전문성은 기술이 아니라 ‘감각’이다
코칭의 경계선은 “침묵이 몇 초 지나면 질문한다”는 식의 규칙으로 관리되지 않습니다. 진정한 전문성은 지금 이 순간 내가 서두르고 싶은 이유가 개인의 판단인지 구조적 압박인지 구분할 수 있는 센싱(sensing: 관계의 전체 흐름을 예민하게 포착하는 능력)에 있습니다.
변화의 책임을 고객에게 남겨둔다는 것은 그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서 실패를 감당하고, 불확실성을 견디며, 자기만의 의미를 만들 권리를 끝까지 지켜주는 것입니다.
코칭에서 가장 중요한 판단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변화의 책임을 누구에게 남겨둘 것인가’입니다. 이 윤리적 감각을 연마할 때, 우리는 비로소 상대의 영혼이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경이로운 과정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무엇을 시도해 볼 수 있을까요?
다음 번 동료나 자녀, 혹은 고객과 대화할 때 어색한 침묵이 찾아온다면, 서둘러 다음 질문을 던지는 대신 마음속으로 이 말을 먼저 선언해 보십시오. “지금 이 멈춤 안에서 상대방은 자신의 힘으로 길을 찾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단 10초만 더 그 침묵의 공간을 지켜봐 주십시오. 그 10초가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는지 직접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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